조롱박의 추억..

얼마만인지.. 귀한 물건이 과거에서 소환되어졌다.
고3이었던 것도 같고, 갓 스물이었을 때인 것도 같고..어쨌든 결혼한 언니에게 선물해 준 조롱박이 있었다.
집 뜰에 조롱박이 열려있는 걸 보고 아버지께 저기에 그림 그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키운 조롱박을 따서 반을 잘라 속을 깨끗이 파낸 후 – 그 때는 소여물을 끓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가마솥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여물을 끓이실 때조롱박들을 넣고 삶아주셨다.
구수한 향을 내는 여물과 함께 푹 삶아진 조롱박을 꺼내 껍질을 벗겨내고 잘 말린 후 그 위에 혜원 신윤복의 ‘가야금 연주’라는 그림을 그렸다.
조금 독특하게 하고 싶어서 가는 송곳으로 라인을 따고 색을 칠했다.
지금은 냄새가 덜 나는 바니쉬가 있지만, 그때는 독한 냄새 풍기는 니스를 바른 기억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물 끓이는 솥안에 있던 조롱방들과 모락모락 뿌옇게 올라오는 김은 생생하다.
그걸 지금은 하늘에서 쉬고 계시는 아버지께서 귀찮다 안하시고 다 해주셨다.
그런데 얼마전 시골 사는 언니네 집들이를 갔다가 한쪽에 걸려있는 조롱박을 보고 눈이 번쩍!!
ㅎㅎ언니한테는 미안했지만, 나중에 멋진 거 준다하고 강탈(?)하다시피 해서 가져가는 걸 허락받았는데, 깜박하고 챙기지를 못했다가 이번 명절에야 드디어 받을 수 있었다.
여러개를 만들어 선물로 주었던 것 같은데 운좋게 하나를 ..
그 때 조롱박에 송곳으로 라인을 딸 때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더 소중한 기억은 아버지께서 귀찮으실 만도 하셨을텐데, 해달라는대로 기꺼이 다 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주시는 걸로 나를 무심하신 듯 응원해주셨던 것 같다.

몸이 약해 자주 병치레를 했던 나를 중학생이 되었음에도 업고 보건소까지 데려가주시곤 하셨는데 아플 때만 업히긴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께 업히는 걸 정말 좋아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건 아프거나 자다가 무서운 꿈을 꿔서 깨고나면 아버지옆으로 가서 자곤했다.
중학교 1학년인지 2학년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아버지가 타고 다니시는 오토바이를 호기심에 타고 싶다고 타도 되냐고 여쭤봤는데 바로 타봐~하셨었다. 난 그 날 이후로 몇가지 기능만 아버지께 배워서 매일 연습을 했다.
혼자 연습하다 오토바이 무게를 못이겨 넘어지면서 다리에 돌이 박혀 피가 금새 안 멈춰서 혼자 울면서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난 결국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었다.
정말 신나서 학교 가기전 일찍 일어나서 가까운 논까지 혼자 드라이브를 하고 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게도 죽을 뻔한 기억도 있지만, 혼자 좀 거리가 되는 곳도 다니곤 하고 뒤에 엄마를 태우고 다니기도 했었다.
아마 엄마는 뒤에 앉아서 꽤 불안하셨을 터인데 그래도 타주신거 보면^^
ㅎㅎ 오히려 지금은 겁이 많아진건지 오토바이를 타라하면? 글쎄..

조롱박하나로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내 코끝을 찡하게 한다.

조롱박1

조롱박2

조롱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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